2장 · 짧은 날개

라마에도 학교가 있다.

마을에 하나뿐인 건물이라 학년이 뒤섞여 있고, 교실은 둘이며, 종은 사람이 손으로 흔든다. 이 세계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는 이 학교의 시간표를 이해하려고 며칠을 썼다. 결론은, 시간표가 없다는 것이었다. 날씨가 좋으면 밖에서 하고, 파도가 높으면 안에서 한다.

그날은 안에서 했다. 파도가 높아서가 아니라, 낮아서였다.

교실 창으로 보이는 바다가 유난히 잔잔했다. 물결이라기보다 젖은 유리에 가까웠다. 선생님이 창문을 한 번 내다보고, 오늘은 실내 수업을 하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야외 수업이 아니라서 실망했고, 나는 그 짧은 눈길이 실망보다 조금 더 무거워 보인다고 생각했다. 잔잔한 날에 실내로 들이는 이유를 나는 아직 모른다.

이 세계의 마법에는 규칙이 하나 있다. 종족마다 되는 계열이 정해져 있다. 두더지는 흙을, 카멜레온은 몸을 감추는 것을, 펭귄은 물과 얼음을 다룬다. 재능이 아니라 태생의 문제라서, 이곳 아이들은 "무엇을 잘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으로 태어났느냐"를 먼저 배운다.

그날 수업은 물방울 하나를 공중에 띄우는 것이었다. 펭귄에게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했다.

코로는 그 기본을 못 했다.

정확히 말하면 물방울은 떴다. 방향이 문제였다. 물방울은 코로의 앞이 아니라 옆으로, 정확히 선생님의 안경을 향해 날아갔다. 교실이 뒤집어졌고, 선생님은 안경을 닦으며 한숨을 쉬었는데, 그 한숨에 화가 별로 섞여 있지 않은 걸 보니 처음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유는 날개였다.

블루펭귄의 날개는 짧다. 헤엄치기 위한 물건이지 무언가를 가리키기 위한 물건이 아니다. 그런데 이 세계의 마법은 시전 동작이 크고 정확해야 한다. 코로가 팔을 뻗어 각도를 잡으면, 그 각도는 어깨에서 이미 절반쯤 어긋난다. 옆자리의 두더지 아이는 앞발이 삽처럼 넓어서 흙을 다룰 때 유리하고, 뒷자리의 도마뱀 아이는 손가락이 길어서 무엇이든 정확히 겨눈다. 코로는 자기 몸으로 태어난 것을 원망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곧 부리로 각도를 잡아 보겠다며 다시 물방울을 만들었다.

두 번째 물방울은 자기 얼굴에 떨어졌다.

나는 이 아이가 왜 관측자 혈통 안에서 별종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관측이란 가만히 지켜보는 일이고, 코로는 가만히 있는 법을 모른다.

쉬는 시간에 아이들은 잔잔한 바다 이야기를 했다. 이런 날에는 물이 유리 같아서 바닥이 보인다고, 누가 그러더라. 그럼 저 아래까지 다 보이겠네, 하고 다른 아이가 말했고, 세 번째 아이가 그럼 저 아래 있는 것도 이쪽을 볼 수 있는 거냐고 물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누군가 화제를 바꿨고, 아이들은 곧 다른 이야기로 웃었다.

이 마을의 아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언제 그만둬야 하는지를 이미 안다. 그건 배워서 아는 게 아닐 것이다.

돌아가는 길에 코로는 젖은 목도리를 손에 들고 걸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말할 수 있을지 궁리하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나는 안다. 그날 밤 그 방의 빛이 켜졌고, 다음 날 나는 그 이야기를 다른 쪽에서 한 번 더 읽었다.

읽었다,고 쓰는 게 아직도 이상하다. 나는 저 아이의 하루를 두 번 본다. 한 번은 꿈에서, 한 번은 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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