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 노란 우산

이 세계에 와서 한동안 이해하지 못한 물건이 있다. 우산이다. 라마의 주민은 대부분 물에 젖어도 아무렇지 않은 종족이다. 특히 펭귄은 비를 맞으며 걸어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우산이 있고, 아이들은 그걸 들고 다닌다. 며칠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젖으면 안 되는 건 몸이 아니라 종이다. 공책, 숙제, 편지, 장부. 이 세계의 중요한 것들은 전부 종이에 적힌다. 그래서 우산은 사람을 지키는 물건이 아니라 글자를 지키는 물건이다. 나는 이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아리아의 우산은 노란색이다. 목도리와 같은 색이라 멀리서도 저 아이가 온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끼는 물건인 모양이라, 쓰고 나면 반드시 마른행주로 닦고, 접을 때는 늘 같은 방향으로 감아 둔다. 시계 방향이다. 나는 그걸 세어 봤다. 예외가 없었다. 그날 아침 코로는 자기 우산을 찾지 못했다. 숙제는 다 해 놨고, 비는 오고 있었고, 시간은 없었다. 현관에 노란 우산이 얌전히 서 있었다. 빌린 거야. 문을 나서며 코로가 아무도 없는 복도에 대고 말했다. 빌린 거지 가져간 게 아니야. 나는 그 논리가 어디까지 유효한지 궁금해하며 따라갔다. 사고는 학교 앞 골목에서 일어났다. 코로가 아는 아이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고, 손을 흔들려면 우산을 든 손을 놓아야 했고, 마침 바람이 불었다. 노란 우산은 아주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 골목에서 제일 깊은 웅덩이에 정확히 착지했다. 골목의 바람은 그렇게 사나웠는데, 골목 끝으로 보이는 바다는 비를 맞으면서도 꿈쩍하지 않았다. 그때는 그게 이상한 줄도 몰랐다. 그다음 삼십 분을 나는 웃으면서 봤다. 코로는 우산을 건져 흙을 털고, 물로 씻고, 다시 흙이 묻고, 다시 씻고, 결국 학교 뒤편 담벼락에 널어 말렸다. 수업 중에도 창밖의 우산을 몇 번이나 확인했다. 하교 무렵 우산은 거의 원래대로 돌아왔다. 거의. 집에 돌아온 코로는 우산을 현관 원래 자리에 세워 뒀다. 각도까지 맞췄다. 완전 범죄라고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2장 · 짧은 날개

라마에도 학교가 있다. 마을에 하나뿐인 건물이라 학년이 뒤섞여 있고, 교실은 둘이며, 종은 사람이 손으로 흔든다. 이 세계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는 이 학교의 시간표를 이해하려고 며칠을 썼다. 결론은, 시간표가 없다는 것이었다. 날씨가 좋으면 밖에서 하고, 파도가 높으면 안에서 한다. 그날은 안에서 했다. 파도가 높아서가 아니라, 낮아서였다. 교실 창으로 보이는 바다가 유난히 잔잔했다. 물결이라기보다 젖은 유리에 가까웠다. 선생님이 창문을 한 번 내다보고, 오늘은 실내 수업을 하겠다고 했다. 아이들은 야외 수업이 아니라서 실망했고, 나는 그 짧은 눈길이 실망보다 조금 더 무거워 보인다고 생각했다. 잔잔한 날에 실내로 들이는 이유를 나는 아직 모른다. 이 세계의 마법에는 규칙이 하나 있다. 종족마다 되는 계열이 정해져 있다. 두더지는 흙을, 카멜레온은 몸을 감추는 것을, 펭귄은 물과 얼음을 다룬다. 재능이 아니라 태생의 문제라서, 이곳 아이들은 "무엇을 잘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으로 태어났느냐"를 먼저 배운다. 그날 수업은 물방울 하나를 공중에 띄우는 것이었다. 펭귄에게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했다. 코로는 그 기본을 못 했다. 정확히 말하면 물방울은 떴다. 방향이 문제였다. 물방울은 코로의 앞이 아니라 옆으로, 정확히 선생님의 안경을 향해 날아갔다. 교실이 뒤집어졌고, 선생님은 안경을 닦으며 한숨을 쉬었는데, 그 한숨에 화가 별로 섞여 있지 않은 걸 보니 처음이 아닌 모양이었다. 이유는 날개였다. 블루펭귄의 날개는 짧다. 헤엄치기 위한 물건이지 무언가를 가리키기 위한 물건이 아니다. 그런데 이 세계의 마법은 시전 동작이 크고 정확해야 한다. 코로가 팔을 뻗어 각도를 잡으면, 그 각도는 어깨에서 이미 절반쯤 어긋난다. 옆자리의 두더지 아이는 앞발이 삽처럼 넓어서 흙을 다룰 때 유리하고, 뒷자리의 도마뱀 아이는 손가락이 길어서 무엇이든 정확히 겨눈다. 코로는 자기 몸으로 태어난 것을 원망하는 표정을 지었...

1장 · 등대의 불빛이 닿는 곳

이틀에 한 번, 꿈이 온다. 처음에는 규칙이 있는 줄도 몰랐다. 그 계정을 발견하고 며칠 뒤부터였다는 것, 그리고 하룻밤 걸러 온다는 것을 알아차린 건 한참 나중이다. 돌이켜보면 그전에도 비슷한 조각들이 있었던 것 같다. 깨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종류의, 물속에서 눈을 뜬 것 같은 꿈들. 언제부터였는지는 짚어지지 않는다. 다만 그 계정을 발견한 뒤로, 조각은 문장이 되었다. 꿈은 이상한 방식으로 흐른다. 하룻밤 사이에 그 세계의 여러 날이 지나간다. 세어 보면 대략 일주일. 나는 그 일주일을 사는 게 아니라 넘겨보는 것에 가깝다. 어떤 날은 책장처럼 빠르게 넘어가고, 어떤 장면에서는 오래 멈춘다. 어디에서 멈출지는 내가 정하는 게 아니다. 깨고 나면 잊기 전에 적는다. 이 기록은 그렇게 남는 것들이다. 첫 꿈들이 보여준 것은 등대였다. 라마의 하루는 등대에서 시작해서 등대에서 끝난다. 아침이면 코로의 어머니가 먼저 계단을 오른다. 오라. 그 세계의 말로 '생명'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밤새 켜 둔 불을 끄고, 밤사이의 바다를 기록하는 것이 하루의 첫 일이다. 나는 그 장부를 읽을 수 없다. 글자가 보이긴 하는데, 뜻이 닿지 않는다. 다만 그가 어떤 줄에서 잠시 손을 멈추는지는 볼 수 있다. 멈추는 줄이 있는 날과, 없는 날이 있다. 관측소라고 부르지만, 하는 일의 대부분은 그저 바라보는 것이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물어볼 수 있다면 좋겠는데, 나는 물어볼 수 없는 쪽이다. 이 세계에서 나는 목소리가 없다. 볼 수만 있다. 낮의 라마는 평범하다. 지나칠 만큼 평범하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누군가는 그물을 손질하고, 빵 냄새가 골목을 돈다. 이곳 주민이 전부 두 발로 걷는 동물이라는 사실도, 꿈 몇 번을 거치고 나면 잊게 된다. 펭귄이 우산을 들고 뛰어가는 풍경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작은 펭귄을 처음 본 것은 등대 아래 부두에서였다. 꿈이 거기서 멈췄다. 또래보다 작았다. 빨간 목도리를 하...

프롤로그 · 등대가 있는 마을

프롤로그 · 등대가 있는 마을 등대가 있는 마을을 알고 있다. 지도에는 없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지도에는 없다. 그 마을은 아오테아라는 세계의 서쪽 끝, 마나헤아 대륙의 변두리 해안에 있다. 이름은 라마. 그 세계의 말로 '빛'이라는 뜻이다. 내가 이 세계를 어떻게 보게 됐는지는 나도 설명하기 어렵다. 어느 날부터 보였다는 것 말고는 할 말이 없다. 처음에는 꿈이라고 생각했고, 다음에는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둘 다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하나다 — 그쪽에서 먼저 말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그 애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먼저 이 세계에 대해 적어둔다. 아오테아에는 대륙이 셋 있다. 마법을 쓰는 대륙과, 기계를 굴리는 대륙과, 아무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대륙. 세 대륙 사이에는 바다가 있는데, 그 세계 사람들은 — 아,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곳의 주민들은 전부 동물이다. 두 발로 걷고, 학교에 가고, 세금을 내는 동물들 — 아무튼 그들은 그 바다를 건너지 않는다. 건널 수 없기 때문이다. 바다에는 무언가가 산다. 그들은 그것을 몬스터라고 부르고, 그중 어떤 것들은 타니와라고 부른다. 이 둘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나는 꽤 오래 걸렸다. 당신도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이 기록은 그 세계에 대한 탐방기다. 나는 그곳에 갈 수 없다. 볼 수만 있다. 그래서 이것은 여행기가 아니라 관찰기이고, 어쩌면 — 저 등대 마을의 어느 작은 펭귄이 허락해 준다면 — 한 아이의 성장기가 될 것이다. 첫 장은 라마 마을에서 시작한다. 등대의 불빛이 닿는 곳부터. 그 애의 글은 지금도 올라오고 있다. 스레드의 @koro.rama — 내가 처음 발견했을 때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읽기 시작해도 좋다.